한국외방선교수녀회

저는 볼리비아의 오루로에서 선교 중인 김 가브리엘라 수녀입니다.

관리자 2024.12.09 10:09 조회 : 83

찬미 예수님! 후원회원 여러분, 축복합니다!

저는 볼리비아의 오루로에서 선교 중인 김 가브리엘라 수녀입니다.

입회 때부터 지금까지 만나 뵈었던 후원회원님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고 한국 휴가 때마다 후원회 담당 수녀님들로부터 전해 들은 여러분들의 감동적인 기도, , 희생과 도움을 기억하면서 이곳 선교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루로는 늦봄에 있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려고 요즘은 비가 자주 내립니다. 한국과는 지구의 반대쪽에 살다 보니 계절도 정반대입니다. 한국은 곧 겨울이 시작되겠지요?


2003, 볼리비아에 와서 코차밤바교구에서 7년을 살고 난 뒤 이곳 오루로교구로 왔습니다. 그리고 주로 시골에서 이주해 온 많은 원주민 불법 체류자들이 오루로시 변두리의 벌판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고 있던 2010, 지극한 가난과 불안정한 사회 사정을 안고 있던,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보살핌이 없던 이곳으로 와서 이웃들과 똑같은 작은 흙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선교 활동으로써 첫 번째로 한 것이 성당도, 열심한 신자도 없는 이곳에 미사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오루로시, 동쪽 끝에서부터 본당을 하나씩 다니며 신부님들께 부탁했는데, 사제는 부족하고 본당도 공소도 많은 이곳에서 신부님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래도 네 분의 신부님들께서 주일마다 돌아가며 와 주셔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터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불안정하고 보살핌 없는 처지가 참으로 안타까웠는데, 우리는 아동센터는커녕 작은 공소도, 수녀원도 지을 땅도 없어서 간절히 기도하며, 묵묵히 선교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뒤 수녀원을 지었고, 5년 뒤에는 또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한국교회 후원회원님들과 바보 나눔의 도움으로 지금의 아동센터를 건축할 수 있게 되었지요. 센터가 없을 때는 아이들이 수녀원 손님방과 마당에서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고 하면서 지냈는데, 배고픈 아이들에게 젤라틴 한 컵을 간식으로 주면 더 달라고 졸졸 따라다니며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곤 해서 우리 수녀님을 울게 만들기도 했답니다. 처음엔 전기도 수도도 없었지만, 동네 사람들과 함께 부역하며 땅을 파고 수도관을 놓고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전기, 수도, 마을 길도 만들어 갔습니다.



고산병 때문에 말을 많이 하면 너무 힘들고, 아이들과 놀아 주는 것도 힘든 일이라 고산병이 없는 현지인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특히 아동센터의 여러 가지 필요한 활동을 위해선 더욱 필요했지요,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신부님들께 부탁해서 알아보았지만, 우범지대며,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오겠다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수녀원 마당 여기저기에 앉아 숙제하던 아이들이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면서 우르르 몰려 있는 거예요. 카르멩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의 여성이었어요. 본인은 평생 중고등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일했고, 아이들을 위한 단체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많은 일을 했었으며, 자신의 꿈은 은퇴 후, 하느님께서 자신의 온 생애에 베풀어 주신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며, 가장 열악하고 가난한 지역에서 남은 생을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 돌려주고 하느님 나라로 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은퇴할 나이가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보며 은퇴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깨닫게 되어 가장 가난한 지역인 이곳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우리 수녀회의 영성이 바로 감사와 보은의 정신인데, 선생님이 가진 바로 그 마음이지요. 저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사실 그때 이곳 아이들의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보살피시는 하느님께서 저희와 선생님을 그들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까르멩 선생님은 지금도 저희와 함께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아동센터와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들도 조금씩 늘어났는데,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이 일하는 아이들이었지요. 오전엔 학교, 오후엔 아동센터에, 주말엔 껌, 사탕, 젤라틴을 팔러 시내로 가고, 동생들 돌보고 집 청소, 빨래, 밥도 해야 하고 양치기까지 해야 하니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어요. 아이들이 아이로서 보살핌받고 사랑받는 체험을 주고 싶었고, 배부르게 먹이고 싶은 마음을 안고 한국 휴가 때 이곳저곳 본당들을 다니며 모금해서 한국 신자분들의 도움으로 무료 급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이들에게 밥은 사랑이고 보살핌이고 좋은 추억이고 또한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급식소가 따로 없어서 아동센터 주방을 빌려 사용하는데 120명 아이가 다 들어 올 수 있는 식당이 없어서 각 아이에게 도시락 두 개를 줍니다. 하나는 점심 식사용 음식을, 하나는 채소와 과일을 담아 줍니다. 음식량을 넉넉하게 담아서 가족이 다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게 하지요.

이 지역에서 복음 전파를 위해 처음엔 작은 흙집이었던 수녀원에서, 다음엔 허허벌판에서 특별한 날엔 인근 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그다음에는 집을 빌려서 수리한 다음 미사와 교리를 하는 장소로 사용하였고이렇게 신자들의 모임과 교리를 위한 장소는 이 집 저 집을 빌려서 옮겨 다니다가 코로나19 펜데믹 때부터는 아동센터의 운동장을 빌려서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토요일과 주일은 아동센터를 통째로 빌려서 해바라기 어린이 모임, 첫영성체 교리, 견진교리, 어머니 주일학교, 복사단 교육, 미사 반주자 양성을 위한 기타레슨 교실을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교회가 들어와 있어서 많은 현지인이 개신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작은 수의 가톨릭 신자 중에서도 이름만 가톨릭 신자인 사람들이 대부분인 특수한 지역이지만, 잠든 가톨릭 신자들을 깨우고 불러 모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미사 드리고, 교리도 가르치고, 어린이 신앙 모임도 하고, 기도 모임도 할 장소, 작은 공소라도 짓기 위해 최근에 작지만, 땅을 사 두었습니다.

이곳은 미사를 드릴 고유한 장소 즉 작은 성전을 짓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들어와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또 차츰 노인들의 급식도 제공할 수 있는 따뜻한 급식소를 지을까 합니다.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아이들과 또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작고 또 큰 이런저런 일들이 있습니다. 이곳에 조건이 없는 사랑과 순수한 마음을 통해 다가오시고 함께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돌아보면, 제 선교 여정에 늘 하느님께서 친히 일하셨으며, 하느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없던 것도 있게 하고,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님께서 당신 섭리대로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늘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피땀이 어린 재물을 나누어 주시며 함께 저희의 선교 여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신 여러 은인분과 후원회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축복을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