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방선교수녀회

하늘과 가장 가까운 남미의 지붕 - 선교지 볼리비아 코차밤바. 윤 ...

관리자 2024.12.09 09:58 조회 : 59

하늘과 가장 가까운 남미의 지붕

 

 선교지 볼리비아 코차밤바. 윤 미리암 수녀

하늘과 가장 가까운 남미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볼리비아에서도 영원한 봄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이름다운 코차밤바에서 영적, 물적으로 저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후원회원님들과 은인들께 그리움과 깊은 감사를 담아 인사드립니다.

 

저는 현재 최요한 공부방과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공동체를 떠나 코차밤바 외곽에 위치한 마리아 막달레나 수녀회(Hermanas de Santa Mar?a Magdalena Postel)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85명의 어린이 및 청소년들과 생활하고 있습니다. 4~18세까지의 여아들이 한 명의 관리자를 중심으로 그룹홈에서 12~15명씩 나뉘어 생활하고 있으며 다자녀가 대부분인 볼리비아의 특성상 자녀 중 두 명에서 네 명의 자녀들이 모두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일과는 그룹홈에서 관리자들과 함께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오후에는 담당 교사와 함께 학교 숙제를 지도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마치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매일 다치고, 실수하며 눈을 뜨는 새벽부터 잠드는 밤까지 매순간이 도전의 나날입니다.

책임수녀의 허락 없이 아이들은 보육원 문을 나갈 수 없으며 스스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학교에 보내지 않고 대신 벌칙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매일 각자 주어진 일들이 있으며, 피를 나눈 자매가 아니어도 나이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고, 부족한 것들이 많아도 만족하며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시설 외에는 활동적이고 호기심 많은 시기에 있는 아이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육원 내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아이들은 저를 매우 흥미 있게 생각하며 ‘Hermanita coreana(한국인 수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들과 다르게 생긴 외국인 수녀가 자기들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신기하고, 말하고, 웃는 것, 심지어 기침하는 것도 신기해하며 어디를 가든 졸졸 따라다니고 관심을 받는 바람에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살고자 결심한 이유는 이들의 말과 문화를 배우고 삶을 함께 나눔으로써 우리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더 가깝게 느끼며 그 힘으로 더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저를 내어주고자 이들 속에 섞여 밥을 짓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한국인이든 볼리비아인이든 아무런 차이나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순간 이러한 차이들에 지치기 시작했고 스스로 우울해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들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불만이 생기고, 나아가 저에게 익숙한 것들을 그들과 비교하며 편견을 쌓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녀들과 함께 외부로 정해진 새벽미사에 가기 위해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 현관문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저는 미사에 가지 못한 날이 셀 수가 없고, 공동 기도나 식사 시간에도 제대로 시간을 지키는 일이 드물어서 혼자 늘 기다려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불편한 내색을 해도 미안해하거나 이유를 알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도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서 모두가 모이려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약속한 시간을 왜 지키지 않는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Es hora de Bolivia. (볼리비아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어느 날 저는 한숨의 잠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좁은 동물원에 갇혀 우리 안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헤매는 맹수처럼 내 힘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문제에 갇혀 내일은 또 어떤 것에 놀라고 실망해야 하는지 불안했습니다, 이대로 우울하고, 불만 가득한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더라도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현실을 바꾸려는 마음이 아니라 어렵지만 이해하고자 하는 유연한 마음을 갖고 나니 아직 미숙한 언어에도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한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그들도 자신들의 불찰을 인정하며 개선하겠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저 역시 그들을 완벽히 이해하거나 그들처럼 살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배우고자 왔으며 그들도 나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나니 그동안 어둡고 절망적이었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이런 순간들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며 빛을 밝혀주시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은 서먹했던 관계를 좀 더 편안하고 친밀하게 만들었고, 특히 경계심이 많고 예민한 성격인 아이들의 경우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며 관심을 갖다 보니 이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익숙한 친구처럼 저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관계에 대한 변화를 느끼고 나서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탕 한 알을 주어도 기뻐하며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들의 미소, 식사를 준비하는 바쁜 시간에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음식의 맛을 보여주며 조리법을 설명해 주는 그룹홈 관리자들의 배려, 미리 알려줘야 하는 정보나 시간들을 공유하지 않고 잠깐 머물다가는 손님을 대하듯이 무성의했던 수녀들이 밤늦게라도 변경된 일정에 대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예의 등에 새롭게 감사하며 알게 된 것은 제가 너무 조급했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려면 기다리고 인내하며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데 저 자신의 시선과 판단에 갇혀 해결책부터 생각하며 자주 지쳤고, 기도조차 소홀히 하며 기쁘게 생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밭에 씨를 뿌려놓은 농부가 조급해한다고 가지가 자라고 잎이 싹 트는 것이 아님을 알고도 말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저를 쫓아다니며 끊임없이 종알거리고, 제가 틀리게 말한 단어들을 고쳐주며, 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바쁩니다. 또 노는 모습이라도 곁에서 지켜봐 주면 더 없이 신나합니다. 저에게 이제 이곳의 아이들은 친구이며, 선생님이고, 때론 따뜻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저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또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멈추어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단순히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내어주는 것, 삶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공감하는 것. 주님께서는 증거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이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십시오!”(교황 프란치스코, 201910특별 전교의 달개막 저녁기도)

후원회원님들과 은인들의 가정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축복이 언제나 가득 내리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