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방선교수녀회

[선교지에서 온 편지] 방글라데시에서 김진희 수녀 (2·끝)

관리자 2023.11.23 10:35 조회 : 140

새 생명 앞에서는 아기처럼 순수해집니다.


수녀인 제게

아기를 축복해 달라는

무슬림 가족들도 적지 않습니다

 

공부방은 4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초등학교로 성장했습니다

이슬람 나라에서 조금이나마

그리스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끌어내는

작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이 국교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이웃 종교에 완화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종교의 큰 축제를 공휴일로 지정하며 존중하고 있는 것이 이곳 문화입니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88% 이상이 무슬림이고, 이들이 사회ㆍ정치ㆍ경제 실권의 전반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소수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진출해 목소리를 내기란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사회 약소 집단으로 남아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두 손 모아 무릎 꿇고 엄마 옆에 앉아 기도하는 귀여운 아기


성당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그리스도인 마을 형성

 

그럼에도 방글라데시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교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울타리 안에 살게 됨을 의미합니다. 시골로 갈수록 그 모습은 두드러집니다. 마을 전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거나, 성당(미션이라 부름)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그리스도인 마을을 형성한 형태를 많이 보게 됩니다.

 

지역적으로 넓게 분포된 신자들을 찾아다니기엔 사제 수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어쩌다 교회의 큰 축일, 또는 사순ㆍ부활ㆍ성탄에만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수녀회가 선교하고 있는 다카관구 디나즈풀교구의 교구장 주교님은 항상 선교사들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하신 예수님 말씀이 언제나 생각납니다.

 

그럼에도 사순 시기나 성모 축일에 조용히 두 손 모아 무릎 꿇고 엄마 옆에 앉아 기도하는 귀여운 아기부터 초라한 모습이지만 경건한 눈빛으로 거룩한 전례에 임하는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까지, 이들이 보여주는 신앙을 대하는 태도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깊은 울림을 줍니다. 비록 매 주일 미사에 참여는 못 하더라도 마을마다 사순 시기나 묵주 기도 성월이 되면 순번을 정해 가정을 돌며 매일 기도 모임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이들이 지닌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옛 선조들도 사제가 없던 시기, 이런 모습으로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하고 격려하며 신앙을 키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시골 본당의 기숙사 아이들의 점심 시간


넓게 분포된 신자 찾아다니기엔 사제 수 턱없이 부족

 

축복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 말인지 모릅니다. 방글라데시는 여전히 출산율이 높아선지, 제가 있는 디나즈풀교구 지역만 봐도 산부인과 병원, 특히 산과(産科)에 해당하는 병원이 많습니다. 산모의 연령대는 20대 초중반이 가장 많습니다. 정부에서는 시골 마을마다 건강관리 의료인들을 정기적으로 파견해 산모나 임부의 건강을 돌보는 시스템을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골의 작은 병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특이한 이상을 갖고 태어나는 신생아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큰 병원으로의 전원을 권유하며 퇴원을 시키는데, 과연 시골의 평범한 가정에서 이런 상황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곤 합니다. ‘이 아기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특이한 이상을 지니고 태어난 몇몇 아기들을 제외하면 새 생명의 탄생은 모두를 기쁘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모두가 환대의 경험을 합니다. 서로의 종교가 달라도 축복을 빌어주는 마음은 기쁨을 두 배로 만들어줍니다. 제가 근무하던 병원 산부인과 병동 복도에는 커다란 성모상이 있습니다. 퇴원하는 산모와 가족들이 멈춰 서서 성모상 앞에서 축복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당연히 가톨릭 신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그 중엔 힌두인들도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수녀인 제게 아기를 축복해달라는 무슬림 가족들도 적지 않습니다. 새로운 생명 앞에서는 우리의 마음도 아기처럼 순수해집니다. 종교의 다름도 없어지며, 서로의 축복만을 생각합니다. 참 기쁜 경험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모두가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한 번은 병실을 돌던 중 딸을 출산한 가족이 보여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러나 아기 아버지는 엉엉 눈물을 흘리며 한탄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미 딸이 2명이나 있어요. 그런데 또 딸이네요. 나중에 시집가면, 그때 결혼 비용은 또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해요.”

일대일 장학생 가정 방문


지참금 문화 탓 셋째 딸 태어나자 엉엉 우는 아버지

 

방글라데시에는 힌두인뿐만 아니라, 무슬림들도 딸을 시집보낼 때 신랑 측에 다우리라고 해서 적정 수준의 돈을 마련해 보내는 문화가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도 딸을 결혼시킬 때 빚을 내서라도 다우리라는 지참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10대 어린 나이에 빨리 시집을 보내겠다고 하니 셋째 딸을 마주한 이 가난한 촌부의 눈물이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이 아기들의 미래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을 믿습니다. 아기들이 우리의 축복과 기쁨을 간직하고 자라나 이들의 미래가 종교 분쟁 없이, 남녀 차별 없이, 인류애를 나누며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무슬림들의 나라에서 선교사로 산다는 것은 분명 쉽진 않습니다. 특히 선교의 대상은 매우 제한적일뿐더러,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내는 어떠한 활동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사회 전반에 걸쳐 이슬람이 아닌 다른 신앙을 가진 이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입지를 지니며 살아기란 어렵습니다. 저희 수녀들은 저녁 식사 때면 각자 그날의 사도직 활동 중 마주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상황을 나눕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댑니다.

크리스찬 마을 입구


도시와 시골,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양극화

 

이곳에 와서 처음 시작했던 공부방은 어느덧 4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초등학교로 성장했습니다. 시골의 10대 소녀들을 위한 기숙사와 그리스도인 주민들을 위한 작은 진료소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해마다 빈곤 가정 아이들을 우선으로 하는 장학금 지급, 영양 보급, 위생 관련 프로젝트들을 실시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환경 개선이 시급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관심이나 해결책은 미미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다양한 NGO 단체들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지만, 한시적이고 일회성으로 왔다 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들 삶의 바퀴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매년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도시와 시골,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너무나 큰 양극화된 사회 모습을 보면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부와 가난의 격차가 큰 이곳에서 저희가 수행하는 사도직 활동을 위해 지지하고 지원해주시는 한국 교회 공동체와 자비로운 마음을 지닌 믿는 이들이 나눠주시는 사랑과 나눔이 저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주는지 모릅니다. 사랑의 힘을 보태주시는 교회와 모든 분께 특별히 가톨릭평화신문을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선교사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이방인으로서 저희는 분명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회 빈부 계층 간의 경계, 무슬림과 힌두인 사이, 그리고 그리스도인과의 경계에 선 이방인 선교사로서 인류애를 기본으로 하는 좋은 모습과 활동을 해내며 이슬람 나라에서 조금이나마 그리스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끌어내는 작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파괴가 아닌 대화와 나눔으로 평화를 이루는 진정한 하느님 나라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루를 시작합니다.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5-501-132723

예금주 : ()천주교한국외방선교수녀회

김진희(콘솔라따) 수녀 / 한국외방선교수녀회 방글라데시 공동체 책임자

 


출처 : https://news.cpbc.co.kr/article/1113034. 가톨릭평화신문.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