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방선교수녀회

하느님 길이 찬미 받으소서 - 서울 후원회 잠실 7동성당 이윤열 ...

관리자 2022.04.15 11:14 조회 : 1646


  ‘하느님 길이 찬미받으소서
  미사전례 중에 성찬례시간 사제의 제대와 예물준비 때, 사제는 빵이 담긴 성반과 포도주와 물이 담긴 성작을 들고 예물준비 기도를 바치면 신자들은 이 응송을 두 번 환호하여 봉헌성가를 대신한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미사전례에서 큰 변화는 성가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가는 최고의 기도라고도 한다. 두 해를 거푸 사순시기와 대림시기를 성가를 못하고 보낸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연중전례에서 풍성한 성가로 신심을 돋울 수 있었던 사순시기나 대림시기, 더구나 사순시기에는 예수님의 수난을 성가를 통해 절절히 느낄 수 있었는데, 성가를 할 수 없으니 그 느낌이 크게 반감되는 기분이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살고 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펜데믹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써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뛰엄 뛰엄 간격을 두고 앉는다. 미사시작 전에, 미사 중에는 악수 등 신체접촉과 비말이 뛰지 않도록 대화하거나 접촉하지 못하도록 안내 한다. 코로나시대는 관계의 단절의 시대다.
 
  미사전례에서 변화도 그렇지만, 지난해에는 한동안 대면미사가 금지되어 영상으로 주일미사를 대신한 때도 있었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반면에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변화는 크지 않다. 코로나19 시대라 하더라도 우리 일상의 생활이 변화가 없듯 개인의 신앙생활도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코로나 감염위험에 취약한 어르신들과 일부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분들은 개별적으로 가정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이제는 이 상황에 잘 적응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적극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분들도 많이 계시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항상 짜여진 일상의 챗바퀴속에서 생활에 큰 변화가 없는 듯하다. 나의 경우에도 아침에 일어나 직장출근과 퇴근, 가정의 생활을 병행한 신앙생활,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해가 떠서 지는 것과 같이 항상 반복된다.
 
  나는 걸어서 출근한다. 대략 한 시간 정도의 거리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특별한 경우-비가 너무 많이 내려 옷이 젖을 경우-가 아니면 걷는다. 이렇게 걷는 이유와 원동력은 묵주기도 때문이다. 하루를 묵주기도로 시작하고, 걷는 내내 성모님과 함께함으로써 평화와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묵주기도와 친하게 된 것은 세례받은 초기다. 직장이 여의도였을 때 세례를 받았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동안 지하철로 출퇴근했다.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통근하는 직장인들로 무척 붐볐다. 지루하게 서서 가기도 한다. 그럴 때, 세례교리 시간에 배운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묘하게도 묵주기도를 하면서 가면 지루한 줄 모르고 사무실까지 가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묵주기도가 하루하루 이어져 한 달이 지나고, 일년 이년 계속 이어졌다. 묵주기도에 맛에 푹 빠져 들게 된 것이다.

  몇 년 후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다. 옮긴 후 지하철은 그때보다 붐비지 않았고, 간혹은 앉기도 해서 그럭저럭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한참 지나, 전 직장 출퇴근하던 때를 회상해 보았다. 묵주기도와 함께 출퇴근했던 그때가 참 행복했다. 성모님과 함께 한다는 포근함에 길고 지루한 출근 시간이 힘든 줄 몰랐고, 오히려 행복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그때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지면서, 이후에는 항상 묵주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강북에서 직장생활-시청인근 이었다-할 때, 강남지역에서 근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면 출퇴근 시간도 짧겠고, 웬만하면 걸어서 출퇴근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진 지가 벌서 5년이다. 처음에 강남으로 옮긴 사무실은 집에서 도보로 대략 30분 거리였다. 즉시 걸어서 출퇴근을 시작했다. 이후 사무실이 봉은사역 옆으로 옮겨져 이제는 탄천 변을 걸어서 출퇴근하게 된 것이다.

  서울의 도회생활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걸어서 출퇴근 하는 덕에 천변의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숲, 야생화들 같은 자연의 모습을 보며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생활하게 된 것이다.

  긴 겨울 뒤, 파릇한 새싹닢이 올라오는 봄의 강변길의 연초록하며, 초여름 푸른 하늘과 개망초꽃, 가시덩쿨갈퀴꽃, 묵주기도 성월의 장미꽃, 산딸나무꽃, 그밖에 들꽃들의 천연스러운 모습에 감동하게 된다. 화단에 가꾸는 꽃은 아무래도 사람손이 자주 가기 때문에 천연스런 맛이 덜하다. 그러나 풀섶에서 자생하는 들꽃은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않으므로 그 모습이 의젖하고 건강하고 자연스럽다. 이런 봄의 건강한 탄생들을 보며 이들을 만들어 내신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을 찬미하게 된다.
 
  또한 추운 겨울날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내가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길, 눈을 이고 있는 소나무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들, 가을날 단풍으로 물든 뚝방의 풍경을 보고 걷는 길이나, 더더구나 쨍하게 투명해서 닿기만 해도 물이 흐를 듯 한 하늘에 태양이 말같게 빛나는 날, 강변길을 묵주기도하며 걸어보라. 혼자서 나그네가 되면 가장 투명하고 순수해진다. 아침의 고요와 침묵 속에서 묵상에 잠겨 기도하며 걸으면 가슴속에서는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하느님 길이 찬미받으소서.”
이 길 위에서는 무엇을 하든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감탄과 찬미가 가득 차올라 감사의 마음과 주님 사랑의 뜨거운 마음이 가득하게 되리라.
 
  이 길에서 느끼는 것은, 간혹 고요한 가운데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침묵과 고요함 가운데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침묵의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의 상대는 그 누구도 없다. 자연이다. 차츰 대화는 자연을 만들어 내신 하느님을 우러러 보며, 조화로운 자연의 모습안에 계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된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연약한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주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왔다.

  기적만이 기적인가, 이 밝은 길 위를 가슴 벅차게 걸어가는 것도 기적이리라.
가슴 가득히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상의 하루가 시작된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 이렇게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내 노력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곁에 있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신앙생활도 건강하게 해 나갈 수 있다. 코로나시대가 단절의 시대라고 하지만 오히려 더 강한 유대로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지 모른다.

  국가적인 방역노력으로 코로나 감염을 최대한 억제되고 있고, 각 지자체 방역담당자의 노고로 감염확산이 제대로 통제되고 있으며, 우리 본당에서도 매 미사 시간마다 발열체크와 출입자명부 작성, 대성당 외 성당 내 외부의 방역활동 등으로 아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코로나 감염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우리 가족으로서는, 아직 코로나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으니 주변의 많은 분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미사에 참례 하지 못하시는 분들마저 서로간의 유대는 필요하고, 그분들을 찾아서 정담은 나누지 못하더라도, 넘치는 예수님의 사랑이 전달되면 좋겠다. 코로나 시대는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천해야하는 시대다.

2021.  0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