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최재선 주교의 * 내 자신의 歷史 一部 6

관리자 2023.05.26 15:09 조회 : 139
최재선 주교의 “내 자신의 歷史 ”

내 자신의 歷史 一部 6

신학생 시절


매 토요일과 큰 축일 전날 저녁 식사 후는 약 300m쯤에 위치한 신학교 위편 루르드 성모 동굴에 전교생이 가서 찬미의 노래를 하고 온다. 그때는 뛰지는 않지만 빨리 걸어 성모당에 선착. 노래와 기도가 끝난 후에 제일 나중에 나와 제일 먼저 학교를 앞서 왔다.

방학 선용. 신학교 방학기는 여름에 3개월, 겨울에 약 40여 일이라 상당이 긴 시간이었다. 신학교 생활 3, 5년 지나갈수록 장래 성직 생활에는 학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 긴 방학을 요령 있게 선용 해겠다는 생각으로 일본 早稻田大學 발행 中學講義文學講義를 구입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읽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에 만족지 못한 나머지, 변천하는 세상에 세상 학문의 기용성을 신학생 모두가 절감하고, 신학교 내에서도 과외로 열심히 사회공부를 했다만 내 머리로는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도 겨우 따라가는 형편이라 다른 공부를 할 여가가 조금도 없었기에 여름 방학을 악착스럽게 이용했다. 그렇게 배운 학식이 일생 유익할 때 많았다.

그리면서 기도, 묵상, 묵주, 성서 독서, 성모경본 가끔 십자가의 길, 신공 등 장시간 계속 궐하지 않았다. 매주 화, , 일에는 반드시 약 4킬로 이상 되는 송대 성당에 미사를 빼지 않았고 아침 일찍이 갔다. 형님들의 바쁘고 고된 농촌 일손에서도 힘껏 공부하는 나를 잘 이해해서 모심기 같은 아주 바쁜 시기를 제외하곤 늘 좋게 봐주셨고 나는 농촌에 꽤 수고스러운 소먹이는 일은 많이 도와 거들어 드리면서도 손에 책은 놓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이 나에 대한 평도 괜찮았다. 이런 신학생 생활 12년은 나에게 어려운 훈련의 기간이었다만 그간 여름 방학 때 병마로 학기 초 3일 피정에 하루를 늦게 참석일 외에는 12년 개근의 건강을 주신데 하느님께 감사한다.

1934. 6. 15. 대구 유스티노신학교 철학과 졸업기념

1934. 12. 22. 신학교시절 김동언 베드로 신부님과 함께 삭발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