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최재선 주교의 * 내 자신의 歷史 一部 5

관리자 2023.05.26 14:46 조회 : 121
최재선 주교의 “내 자신의 歷史 ”
내 자신의 歷史 一部 5.

신학생 시절 - 영적 시련

양심에 조그마한 거리낌도 피하고 깨끗이 씻어보겠다는 내 마음이 세심으로 변해갔던 것 같다. 아무런 양심 가책도 아닌 무엇도 내 양심을 크게 괴롭혔다. 눈에 보이는 그림, 이성, 신문 조각 기사 등 좋게 볼 수 있는 것에도 어쩐지 자꾸 내 양심을 괴롭혔다. 방학을 끝내고 다시 신학교에 돌아오면 어쩐지 집에 가고 싶은 생각에 여러 번 상당히 괴로워질까? 엄마 형님 누나가 왜 방학 때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을까? 내가 만일 신학교를 뒤에 두고 신학생이 아니다 해도 나를 반가이 해주실까? 아니겠지. 그러므로 신학생이란 신분이 중 한 거다. 신부 된다는 것이 귀중한 거다. 하고 이겨갔다. 오늘도 신학교나 수녀원 지원자 중 어린 시절에 있음 직한 이런 고민에 있는 이들을 과거 내 체험으로 격려한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환상. 만들어져 나오는 모상 등이 토요일 고백 성사 때마다 길게 설명을 해야 하니 괴로웠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정신 신경도 많이 약해진 것 같다. 고백소에서 길게 세세히 설명했어도 또다시 의심이 나고, 고백한 것도 또다시 잘못 고백하지 않았는가? 빠지지 않았는가? 양심의 경향과 동의가 어느 정도 깊었는가? 고해 신부님이 잘못 알아듣지나 않았는가? 등으로 고백 시간만 길어지기도 했고 고해 보고 나올 때는 양심이 기뻤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내 양심을 괴롭혔다. 과거를 너무 파지 말라는 고해 신부의 위안 말씀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시련이 약 3, 4년 계속되었으나 서서히 많이 좋아졌다만 외출할 때는 이것저것 바라보는 데는 세심한 주의를 해야 했다만 겉모양에서나 외부에서 오는 것뿐만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제 나름대로 그려 내는 환상이 더 내 양심을 괴롭혔다 본다. 이런 경우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에게 가끔 있는 일이라 보며 오늘도 이런 분을 만나면 과거 내 체험을 살리며 지도한다. 일생 언제든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었다.

1930년대 High Class 기간 단체사진(대구교구의 계산성당 대구2대 교구장 문제만 제르만 주교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