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최재선 주교의 * 내 자신의 歷史 一部 3

관리자 2023.05.26 10:47 조회 : 108
최재선 주교의 “내 자신의 歷史 ”

내 자신의 歷史 一部 3.

나의 어린 시절과 신앙교육

내 나이 10세가 넘어 신학교에 가기 위해 서당공부만으로는 안 되고 신학문 즉 학교에 가야 한다는 본당 신부님의 지시에 따라 사설 강습소에 가서 보통학교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서당에서 공부한 것이 밑바탕이 되어 쉽게 월반도 하며 급장도 하며 공부를 했다.

연필은 12자로 한 타를 열 자루 값으로 사서 팔아 본전을 뽑고 남은 연필을 합자한 동무와 나누어 가졌다. 그때는 일본인의 통치하에 그들의 지시 감독이 심할 때라 한 번은 학생과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神社參拜 (교황청의 해결 전임) 갔다 와서 마음에 고민을 당했다. 동무들의 불결한 욕설이 들릴 때는 귀를 막고 기다리기도 했다. 그른 말을 듣는 것도 죄라서, 춘추로 한 번씩 오시는 신부님을 뵈옵고 오실 때 마중 나가는 것이 그리 기뻤다. 어떤 때는 부모를 따라 10리 20쯤 거리에 있는 공소에 새벽 일찍이 걸어가서 성체 한 번 더 미사 참례 한 번 더 참석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떤 겨울에 사립문 밖 도랑물에 세수하면서 내 자신이 이런 찬물에 차게 된 손을 좀 더 차갑게 하면서 내가 신학교 생활에 시련을 이길 수 있을 가고 시험도 해 보았다.

1926년 9월 대구 신학교 입학 때

이제 내 나이 15세 때는 1926년 9월 대구 신학교 입학 때가 왔다. 준비하라는 모든 것 대부분을 준비하며 등짐 보따리를 만들었다. 그때 내가 신부 되기를 바라고 바랐으나 신부품 받는 것 못 보시고, 신학교 생활 첫 번째 방학 때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말씀 “너가 꼭 신부가 되고 싶으면 신학교 위편에 루르드 성모굴이 있다. 거기 가서 성모님께 신부되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해라. 그러면 신부 될 것이다.”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고 나의 집에 오셔서 하룻밤을 지낸 대구 서 대주님과 함께 한날한시 아버님은 보따리(보자기)를 매고 나는 뒤따르고 언양에 가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또 기차를 타고 우리보다 6년 선배인 남이란 신학생을 따라 대구에 도착하여 학생 모자를 사 쓰고 신학교 문 안으로 들어갔다.

순정 공소에서 6세에 첫고해를 했고 첫영성체를 했으며, 그곳에서 살던 중에 15세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 신부님과 함께 첫영성체 후 기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