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최재선 요한 주교님의 교서

관리자 2022.08.26 10:31 조회 : 400
50년 전 사목교서를 읽으며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 최재선 주교님의 선종미사에서
최재선 요한 주교님의 교서 "마음의 평화"


세상 만인이 한결같이 원하는 바는 죄 없는 평화의 세상일 것입니다. 수억 만 원의 돈을 가졌고 세계를 휘두를 권력을 가졌다 해도 마음의 평화가 없다면 불안과 공포에 떠는 지옥 생활의 연장일 것이고, 반대로 조반석죽의 끼니를 놓는 사람이라도 순결한 생활에서 오는 평화만 누린다면 세상에서도 천당 성인들이 누리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평화의 생활을 어디서 구할 수 있으며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평화로운 생활의 온상은 재산도, 권력도, 명예도, 향락도 아니고 오직 양심에 불안과 가책이 없는 순결한 생활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인용한다면, “내 비록 천사들과 서로 통하는 언어의 특은을 가졌다 해도 성총지위(은총을 누릴만한 상태, 곧 사랑 - 옮긴 이 주)에 없다면, 즉 마음의 평화가 없다면 우리는 양철이나 소리 나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 또 설령 건설적 설교의 특은을 가지고 모든 신비를 통달하고 알지라도 또 산을 옮길만한 신앙이 있다 해도 성총지위에 있지 아니하면(대죄 중에)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했다.

(1코린 13)

 만일 재산이나 권력이나 학문 같은 것으로 평화로운 생활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하고 오직 극소수의 몇 사람에게만 독점될 것이다마는,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누구든 마음만 있고 노력한다면 다 같이 얻을 수 있는 순결한 생활(큰 죄 없는 생활)에 마음의 평화를 두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생활이 고귀한(고상한) 생활이었다면 모두가 따를 수 없을 것이나, 가난한 생활이었기에 중생이 모두 따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교우는 성체성사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러기에 대죄(大罪)를 범하지 않는 한 언제든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죄는 물론 소죄(小罪)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쳐 죽는 한이 있어도 죄를 피하시지 않았습니까? 큰 죄는 영혼을 죽이고 지존무대(至尊無對)하신 하느님께 반역이 되는 것이니 이런 큰 죄만은 한사코 피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각자는 자기 영혼 상태를 검토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런 죄 중에 있지 않은가? 죄를 범할 위기에 있지나 않은가? 혹은 상습적으로 잘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사회 실태를 살펴볼 때 큰 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예사로 보고 있지 않은가? 혹은 양심에 별 가책도 없이 마비된 상태에 있지나 않은가? 오히려 큰 죄를 자랑처럼 이야기 하지 안 했나? 죄에 대한 심정이 마비되어 아무런 가책도 없이 지나쳐 버리는 사회상, 양심이 마비되어 천지를 분간 못하고 저속한 향락과 허영에 마음이 들떠 자멸의 길에 방황하는 젊은이와 지위와 권세를 악용하여 지능적으로 저지르는 죄악상, 그들이 오도하는 풍조, 괴상한 풍조도 흔한 듯하다.

 

주님은 무한히 자비하시고 동시에 지공지의(至公至義) 하시기에 소돔과 고모라가 두렵습니다. 큰 죄를 예사로 보고 느끼고 사는 것은 자기가 꼰 포승줄로 자기를 묶어 자기가 만든 감방 안에 자기를 가두어버리는 것이다.’란 점을 생각하며 옛 성인들의 말씀, “비록 내 생명을 잃어버릴망정 죄는 범치 말아야 하며, 죄의 악이 하도 커서 하늘의 벼락도 부수어버릴 수 없고, 아무리 큰 구덩이라도 잡아넣을 수 없고, 지옥의 맹렬한 불로 태워버릴 수 없고, 천주 성자께서는 당신 구속성혈을 천답(踐踏)하니(밟아버리니, 무시하니 - 옮긴이 주) 싫어하신다. 이런 죄의 악을 멀리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셨던 옛 교서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1958년 8월, 부산교구 교구장 최재선 요한 주교

2008년 06월 04일 - 조영만 세례자 요한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