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성모님께 기도하자 - 이때 저에 대한 한 말씀.

관리자 2022.08.19 10:10 조회 : 268
이때 저에 대한 한 말씀.


저는 저 두메산골 한 농부의 제4대째 교우 집 아들로 1912년에 태어나 6세에 첫 고해하고 그때 아버님이 까만 묵주 하나를 사주셨다. 그때부터 매일 묵주신공을 드렸고, 15세 때 신학교 입학할 때 아버님 말씀.
“대구 신학교에 가면 그 옆 주교관 한쪽 마당에 루르드 성모동굴이 있다. 그 성모님께 꼭 신부 되게 해주십사고 기도해라. 그러면 신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후 12년 신학교 생활 후 신부가 되어 20년 사제, 50년 주교, 옛 본당, 새 본당, 험한 본당, 시골, 소도시, 대도시 본당. 교육계로는 김천 성의 학원을 성의 남녀 각각 중 · 고등학교로 신설하듯 했고, 유치원도 설립했다.
일제 때는, 天照大神이 하늘 땅 창조했다 하기에, ‘아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셨다’라고 하다가 경북 영천 경찰서 유치장 생활도 했고, 해방 후 수녀님들 모시려 38선 넘어가고 오기도 하면서 그동안 잘못도 많이 저지르면서 내 나름대로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양심에 어긋나지 않고 언제든 교회 중심으로 노력하면서 오늘 96세 가 되었다. (2007. 현재)
그동안 매일 묵주기도 한 번, 두 번, 세 번 드렸다. 그동안 미사성제를 27,000여 번, 사죄경 수만 번, 성사집행 하면서 살았다. 그동안 수천만 번 십자를 그으며 살아왔다. 오늘 뒤돌아볼 때 과연 지극히 거룩한 성사집행을 성스럽게 행했는가. 반성해 보면 정말 외람된 심정 금할 바 없습니다.
오늘 현재도 성도님들의 덕으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부탁으로 제가 죽거든 허례허식을 하지 말고 먼저 간 사제들과 똑같이 간단하고 검소하게 묻어주십시오. 마지막 조금이라도 폐를 덜 드리고 싶습니다. 교구민 여러분, 저의 잘못은 이해하시고, 기도청합니다.
그리고 부산교구, 교우 총수 40만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큰 발전의 증표 중 하나이다. 사실 모든 사업의 성공은 그 사업의 후임 후배들의 열성에 달렸다. 그렇다면 그간 후배 여러분들의 희생과 열성에 감사와 찬사를 마음껏 드립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루카 17, 10)
이상 기적 같은 많은 은혜에 감사드리며 고요히 무릎 꿇고 생각해 볼 때 감히 외치고 싶은 말은,
“주님은 당신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셨고, 성모님은 우리 부산교구를 땅(땅덩이) 위에 세우려 하시지 않았던가.”라고 외람되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모님을 열심히 공경하고, 모두 묵주신공을 많이 바칩시다.


2007.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