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최재선 주교님과 함께한 모금 여행 - 계속

관리자 2022.08.03 15:57 조회 : 276
최재선 주교님과 함께한 모금 여행


최 주교님은 만나는 사람들을 자신의 성격대로 순진하고 진지하게 대했다. 미국에서 만난 여러 고위 성직자 가운데 쿠씽 추기경은 최 주교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쿠씽 추기경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독특하게 부드러운 마음씨와 소박한 인상을 좋아했다. 대부분의 미국 주교들은 쿠씽 추기경처럼 최 주교님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최주교님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그 특이한 예가 중서부에 있는 한 교구 주교의 경우였다. 손님방에서 두 세 시간을 기다렸으나 주교는 나타나지 않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유도 전해주지 않은 채 결국 오지 않았다.
최주교님은 당연히 화가 났다. 자동차를 타자마자 호주머니에서 담배 갑을 꺼냈다.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공짜로 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와 최 주교님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최 주교님은 한 개비를 내게 주고, 또 한 개비를 자신의 입에 물면서 말했다.
“소 신부, 담배 피웁시다. 나는 화가 나면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어떤 때는 화가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지지요.”
이 말이 내 흥미를 끌었다. 나는 담배를 다 피운 다음 주교님에게 물었다.
“이젠 기분이 좋습니까?”
“아니요.”
주교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묵주를 꺼내고는 “묵주기도나 합시다”라고 했다. 묵주기도를 한 뒤에는 기분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최주교님은 의전儀典 문제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한번은 멕시코에서 만난 한 위엄 있는 주교가 우리의 괴상한 예절을 보고 크게 놀라워했다. 나를 한쪽으로 불러 놓고 내게 교회의 의전 절차에 대해 짧은 강의를 할 정도였다.
여러 가지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자동차의 상석에 관한 것이다. 자동차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뒤 좌석 오른쪽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주교를 보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교가 차에 오르도록 문을 열어주고, 주교가 오른쪽 뒷좌석에 앉자마자 문을 닫고 재빨리 차 뒤를 돌아 왼쪽 좌석, 곧 주교님 왼쪽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경우는 내가 운전을 하지 않을 때를 말했다. 이 예절을 가르친 멕시코 주교가 보는 앞에서 나는 우리를 태우고 갈 차의 오른쪽 뒷문을 열었고 최주교님은 차에 올랐다. 나는 문을 닫고 급히 뒤로 돌아 왼쪽 문을 열고 차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최주교님은 내가 짐작했던 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 앉고 있었다. 멕시코 주교가 말한 상석을 비워놓고 내가 앉으려고 생각한 왼쪽 자리에 편하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최주교님은 내가 차문을 열어주면 먼저 타서는 왼쪽으로 옮겨 앉아 내가 이른바 상석인 오른쪽에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을 보고 당황한 멕시코 주교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 들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최주교님께 도움을 주었던 은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