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최재선 주교님과 함께한 모금 여행 - 최주교님의 모금 강론

관리자 2022.08.02 15:41 조회 : 272
최재선 주교님과 함께한 모금 여행

최주교님의 모금 강론

최 주교님이 미국에 도착한 뒤 3일째 되던 날, 발티모어 대교구의 새로 지은 성모 대성당에서 첫 번째 강론을 하기로 했다. 그 건물은 특별한 건물이었다. 모든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그렇게 호화로운 궁전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당 건물의 건축 가격은 당대 최고의 금액이었다. 성당에 딸린 사제관도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건축물이었다. 젠킨스라는 신자가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면서 오로지 대성당을 짓는데만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발티모어 대교구는 대성당이 전혀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 유언을 바꾸려고 법적 노력을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그 많은 돈이 헛대이 쓰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기념물적인 성당 건물을 세웠던 것이다.
그 거대한 건축물에 도착한 주교님은 다음날 아침 신자들로 가득 찬 성당의 강론대에서 많은 신자들을 영어로 강론 할 것을 생각하자 겁이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부산교구의 대청동 대성당을 본 사람이면 누구든지 최 주교님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산의 대성당은 그 건물에 견주면 마치 자동차 차고 같았다. 최 주교님의 거처가 있는 중앙 성당의 주교관을 그 대성당의 사제관에 견주면 역시 보잘 것 없는 작은 건물이다.
주일 첫 미사는 아침 7시에 있었다. 7시 15분 전 나는 본당 신부님과 함께 최 주교님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나는 마치 사형수를 데리러 온 집행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방안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두 번 세 번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본당 신부님이 안절부절 하지 못해 할 수 없이 문을 열었다. 주교님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5분밖에 안 걸리는 짧은 강론을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자신이 내는 큰 소리 때문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주교님은 내게 한 번 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없다고 말한 뒤 주교님의 소매 자락을 잡고 밖으로 모시고 나왔다.
본당 신부님은 주교님 왼쪽에 나는 오른 쪽에 선채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앞만 바라보며 제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주교님의 두려움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신자들은 주교님의 모금 호소를 잘 이해했고, 주교님의 강론은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 감동은 곧바로 신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미사가 끝나자 주교님은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대성당 정면에서, 강론대에서 그리고 사제관 건물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아무리 말로 설명 해봤자 사람들이 믿으려 들 것 같지 않아 증거물로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