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님과 함께한 모금 여행
최주교님의 모금 강론
최 주교님이 미국에 도착한 뒤 3일째 되던 날, 발티모어 대교구의 새로 지은 성모 대성당에서 첫 번째 강론을 하기로 했다. 그 건물은 특별한 건물이었다. 모든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그렇게 호화로운 궁전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거대한 건축물에 도착한 주교님은 다음날 아침 신자들로 가득 찬 성당의 강론대에서 많은 신자들을 영어로 강론 할 것을 생각하자 겁이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부산교구의 대청동 대성당을 본 사람이면 누구든지 최 주교님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산의 대성당은 그 건물에 견주면 마치 자동차 차고 같았다. 최 주교님의 거처가 있는 중앙 성당의 주교관을 그 대성당의 사제관에 견주면 역시 보잘 것 없는 작은 건물이다.
주일 첫 미사는 아침 7시에 있었다. 7시 15분 전 나는 본당 신부님과 함께 최 주교님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나는 마치 사형수를 데리러 온 집행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방안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두 번 세 번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본당 신부님이 안절부절 하지 못해 할 수 없이 문을 열었다. 주교님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5분밖에 안 걸리는 짧은 강론을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자신이 내는 큰 소리 때문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주교님은 내게 한 번 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없다고 말한 뒤 주교님의 소매 자락을 잡고 밖으로 모시고 나왔다.
본당 신부님은 주교님 왼쪽에 나는 오른 쪽에 선채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앞만 바라보며 제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주교님의 두려움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신자들은 주교님의 모금 호소를 잘 이해했고, 주교님의 강론은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 감동은 곧바로 신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미사가 끝나자 주교님은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대성당 정면에서, 강론대에서 그리고 사제관 건물 앞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아무리 말로 설명 해봤자 사람들이 믿으려 들 것 같지 않아 증거물로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