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일제 치하의 유치장 생활 3.

관리자 2022.06.01 10:52 조회 : 356
일제 치하의 유치장 생활 3.
여름이면 빈대와 이가 들끓었는데, 말로만 듣던 콩알만 한 큰 이들이 잡힐 때도 있었다. 빈대를 유심히 관찰한 결과, 그들이 여름을 지내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에는 허물을 벗고 ‘가을 빈대’로 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빈대학을 공부했다고나 할까?
유치장에는 아무것도 갖고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모든 성무일과는 묵주기도로 대신했다. 물론 손가락 묵주였다. 일본인 주교가 한 번은 면회를 와서, 나를 서장실로 불러가 그들(주교와 서장) 앞에 꿇어앉은 적이 있었다. 내게 필요한 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갇히게 된 사유를 주교에게 말하려 했으나 서장이 못하게 막았다. 유치장 생활 중에 배불리 먹어 본 적이 두 차례 정도 있었는데, 그것은 행운이었다. 식사는 유치장에 갇힌 머릿수대로 나왔는데, 취조를 받다가 석방되어 버린 사람이 있어서 그 몫의 식사까지 2인분을 먹은 기억이 난다.
6개월을 이렇게 살다 보니 운동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영양실조였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각기병에 걸려서 다리가 붓고 그 자리를 누르면 다시 원상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던 시절의 슬픔이었다. 그러나 유치장 생활 6개월은 내 일생의 앞길을 다시 한번 다짐해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외방선교회 최재선 주교 회고록
『감사의 마음. 보은의 약속』
편집 : 한국외방선교회. 김학현 미카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