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주교의 삶

[데스크시각] 프란치스코 교황과 故 최재선 주교 /이흥곤

관리자 2022.07.03 20:29 조회 : 267
천주교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낸 최재선 주교. 그는 6년 전 96세로 선종했다.
몹시 추웠던 12월 어느 날 부산가톨릭신학대 내 한국외방선교수녀회를 찾은 기자는 아직도 그와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양지바른 주교관을 마다한 채 수녀회 정문 옆 두세 평 남짓한 수위실을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하던 그는 사제복 위에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차츰 발이 시려온 기자가 "춥지 않으시냐"고 묻자 조그만 라디에이터를 가리키며 "난방이 잘된다"고 답했다. 전화벨이 울려 방으로 들어간 사이 라디에이터에 손을 대보니 단지 미지근했을 뿐이었다.
1957년 천주교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에 임명된 그는 1973년 사임할 때까지 16년간 척박한 교구를 일궜다. 교구청도, 주교관도 없어 중앙성당 옆 적십자관 2층에서 더부살이로 시작했다. 기도와 함께 교구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과 로마 교황청 등 장소를 불문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국내 천주교의 관례가 된 묵주기도 봉헌운동은 이때 나온 것이었다.
기도의 힘이었던지 재임 기간 지금의 부곡동 부산가톨릭대 부지 17만 평과 부산가톨릭센터 및 금정산 일대 70만 평 부지, 메리놀병원, 개축 및 신축한 36개 성당 등이 부산교구 재산으로 들어왔다. 은퇴 후엔 한국교회도 이제는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외방선교회와 한국외방선교수녀회를 창설했다.
최근 외방선교수녀회 내 마련된 그의 유품전시실과 당시 기거하던 숙소를 다시 찾았다. 낡은 안경과 시계 이외에 가위와 바리캉이 눈에 띈다. 최 주교를 모셨던, 동행한 수녀가 "이발은 저희가 해드렸어요"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서울 출장 때도 경로 할인되는 무궁화열차 일반실만 고집했고, 연금 형식으로 받는 돈의 대부분은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했다. 주교관은 설날 단체세배 받을 때 단 한 차례만 이용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나머지 타인에게도 이를 바라 오해 아닌 오해를 받아 스스로 교구장 자리를 미련없이 내려놓은 그. 후일 그가 정리한 '성모님께 기도하자'라는 책자엔 '정당한 판단은 역사와 하느님께 맡깁니다…'라는 긴 여운을 남겼다.
세월호 참사로 한 달여 흔들리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최 주교처럼 스스로를 버리면서 일하는 책임감 강한 어른들의 부재가 못내 아쉬울 뿐이다. 내달 3일은 그의 여섯 번째 기일이다. 그래서 그가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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