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회 소식

해미성지 순례기. 서울 후원회. 이윤열 스테파노

관리자 2022.12.26 10:04 조회 : 353

해미성지 순례기. 

  서울 후원회. 이윤열 스테파노


순례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로 가는 여행입니다.”

 

주님, 성지순례를 떠나는 무지몽매한 저에게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시어

순교 정신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하소서.

 

잠실 7동 성당 전 신자가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은 8년 만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순례 버스에 몸을 싣고 충남 당진 솔뫼, 해미성지로 향했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주임 신부님께서 가슴으로 체험하는 성지순례를 권고하셨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순교자들의 삶을 느껴보리라.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기에 성령의 도우심에 빌어보리라.

 

해미는 내포 지방에 유일하게 진영이 설치된 곳이며 무명 순교자들이 가장 많이 난 순교성지다. 인근 고을 덕산, 예산, 삽교, 신창, 고덕, 신리 등지에서 붙잡힌 천주교인들이 한티 고개를 넘어 이곳 해미읍성 진영 두 곳의 큰 감옥에 갇혔다. 너무 많은 천주 죄인들이 잡혀 왔기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조선 땅에서 유일하게 형벌에서 정하지 않은 벌을 가하던 남형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죄인들에게 가해졌던 형벌들은 지금 들어도 무섭고 소름 끼치는 것들인데, 법에서 정하지 않은 형벌들이 예사롭게 저질러졌다고 하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해미읍성 진영 감옥 옆에는 키 큰 호야나무(훼화나무)가 있다. 이 나뭇가지에 죄수들의 머리채를 메달아 형벌을 가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순교자들이 겪었을 견뎌낼 수 없을 만큼 괴로웠던 형벌을 묵묵히 지켜봤을 호야 나무를 순례자들은 무심히 스쳐 지나쳤다.


순례단은 읍성 동헌부터 시작되는 십자가의 길 제1처를 시작으로 시내를 가로질러 해미성지에 이르는 14처까지 도보로 순례할 예정이었다. 이 길은 읍성 감옥에 갇힌 죄인들을 서녘들판으로 데려가 생매장하거나, 가는 길 중간 개울 돌다리 위에서 자리개질(연약한 순교자를 서너 명의 군졸들이 들어 올려 태질하여 머리와 가슴을 으스러지게 하는 잔인한 처형방법)이나, 엮어서 개울에 수장시키기도 한 그 길이다. 순교자들의 길을 따라 걸으며 순교 정신을 가슴에 새겨 보지만 그때의 참혹한 순교 장면들은 머릿속에서 맴돌 뿐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다.

 

지금은 벼가 익어 황금 들녘을 이루고 있건만 그 시절 그때 순교자들은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으며 이 길을 걸었으리라. “예수 마리아를 간절히 부르던 곳이 이제는 여숫골이 되었고, 죄인을 개울에 빠뜨려 죽인 곳은 죄인 웅덩이 줄여서 진둠벙이 되어 절절한 순교의 장소로 다가온다. 순교자들이 걸어갔던 순교의 길을 우리 본당 순례자들이 걷고 있다.

 

해미성지는 알려진 순교자보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 순교자가 더 많은 순교성지다. 그래서 더욱 가슴 사무치는 순례를 하게 된다. 그들의 순교 정신을 오늘 우리는 이어받고 있을까? 단풍이 든 해미의 들판에서 순교 선조들을 생각하고 순례 버스에 오른다. 나는 오늘 하루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끼는 순교자들의 순수한 신앙을 생각하며 기도한다.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 신앙의 선조인 순교자들에게, 시성의 영예와 시복의 영광을 허락하시어 후손인 저희가 그들을 본받아 신앙을 굳건히 지키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