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회 소식

2022. 7. 19.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

관리자 2022.07.19 16:57 조회 : 807

마태오복음 12장 4절부터 50절짜지의 말씀


찬미예수님..

예수님 시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언자인지.. 단순한 율법학자인지.. 아니면 정말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인지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나자렛에서 나타난 한 젊은 청년의 신원을 밝히는 것은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우리가 믿을 수 있게 표징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메시아라는 표징을 보여주면.. 당신을 믿고 따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재미난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표징을 시원하게 보여주셨다면 어땠을까요?

모세가 파라오게 보였던 표징처럼

강물이 피가 되게 하고 메뚜기 떼가 나타나거나 우박을 내리는 표징을 보였으면 어떠했을까요?

그럼 사람들이 더 잘 믿었을까요....

아니면 엘리야 예언자처럼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에 있는 제물과 제단 전체를 불살라버리고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도 모두 말라버리게 하는

표징을 보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였을까요?

그런데 그런 표징이 일어나 사람들이 믿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이 이어졌을지도 상상해봅니다.

.. 저분이 메시아구나.. 하고 놀라면서도 회개하지 않으면 사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상시처럼 똑같이 미움을 품고, 똑같이 게으르고, 똑같이 약한 사람을 억압한다면..

메시아가 세상에 와도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는 표징만을 요구하는 그들을 꾸짓으십니다.

아무리 표징이 많아도.. 아무리 신기한 일이 많아도

하느님과 내가 인격적으로 만나 내 삶을 회개하고 참된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표징은 단순히 신기한 마술처럼 그저 호기심을 채우는 일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했던 일을 상기시키십니다.

거대한 제국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

조그만 속국 이스라엘의 듣도 보도 못한 요나라는 사람이 회개를 선포합니다.

그러자 온 도시의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께 돌아왔던 그 사건이

바로 표징이라 말씀하십니다.

또 솔로몬의 지혜를 남쪽 나라 여왕이 받아들인 것처럼

내 고집과 내 주장을 버리고

복음의 가치관과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장 큰 표징이라 소개하십니다.

지금 당장 종강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우리 눈앞에서 우박이 쏟아지고

불을 만져도 타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표징이 아니라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내가 하느님께 믿음을 더하게 되는 것,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내 고집과 판단을 줄이고

복음을 따라 변화 되는 것이 바로 가장 큰 표징일 것입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여러분은 어떤 표징을 보고 싶어하셨는지요?

내가 이만큼 관심을 보인 학생이.. 이제는 좀 변해야 하지 않나?

내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저 사람이... 이젠 좀 마음을 바꾸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눈에 보이는 변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표징을 우리 역시 기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학생, 동료 교사의 변화와 혹은 학교의 변화가 표징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변화가 진정한 표징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짜증나고 마음에 걸렸던 일들이

이젠 그 이면을 살필 수 있고, 행간을 읽을 수 있어 내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된다면..

그래서 내가 새로운 시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표징입니다.

복음의 힘이.. 말씀의 힘이 내 안에서 자라게 되고

열매 맺게 되어 과거와 다른 가치관으로 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이고 변화이고 표징입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노력한 많은 것들이 비록 손에 잡히는 열매로 만져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분명 하느님께서는 내 안에서 많은 성장과 변화를 이루어주셨을 것입니다.

이 미사를 봉헌하며.. 한 학기 우리가 만난 학생들, 동료 교사들과의 만남을 돌아보며

눈에 드러나는 즉각적인 표징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복음을 향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함께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아멘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CPBC 주간종합 뉴스. 서울대교구


사진 : 용산 성심 여고